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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뿌리생각을 생각하다 ③ '천부인권'의 더 깊은 의미

알깨남 2024. 1. 12. 23:26

천부인권 사상은 통치자나 국가가 국민을 억압하지 말고,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라는 의미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천부인권 사상의 본래 의미를 완성할 수 없다. 
더 깊은 수준으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민주주의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 않았다. 어느 한 뛰어난 지도자나 철학자에 의해 뚝딱 마법처럼 세상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 년 이상 꿈꾸고 토론하고 검증하면서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 뿌리생각의 본질은 꽤 단순하다. 우리 인간은 그 자체로 귀하다는 것, 존엄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인간 존엄의 가치는 왕이나 국가가 준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통치자나 국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잘 펼치는 수단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점차 확산되어, 이제 세계 대부분의 정치체제는 왕정이나 군주정을 벗어났다.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의 정도도 확장되었다. 천부인권이라는 민주주의의 뿌리생각이 발아(發芽)한지 300여년만에 큰 외형적 발전을 이루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 틀의 구축은 천부인권 사상이 갖는 의미의 반쪽이다. 나머지 반쪽을 찾아 나서야 한다. 
 

'천부인권' 이라는 의미의 남은 반쪽

천부인권 사상이 가져야 할 의미의 나머지 반쪽은, 사람들 각자가 그 천부인권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각성(覺性)에 이르는 것이다. 자신에게 그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사고하고 행동해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그 권리가 있음을 알고 행사하지 않으면, 권리는 무용(無用)하기 때문이다. 
 

1. 자신의 권리를 위임하려는 관성

중세 봉건시대에, 영주에 예속된 노예들은 정작 자신의 해방을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시키는 대로 사는 삶이 편하고 안전하기까지 했는데, 해방이 되서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상황이 두려웠던 것이다. 이 사례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된 존엄의 가치를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보여준다. 
 
인류 역사들 보면, 사람들은 수 천년을 지배받는 생활을 해왔다. 거기에 익숙해졌고, 그런 성향이 DNA에 새겨질만도 하다. 그래서 봉건시대를 벗어난지가 오래되었다 해도 여전히 그런 관성이 남아있다. 중요 사안에 대한 결정에 스스로 생각해서 참여하기 보다는, 지도자가 결정해서 자신을 편안하고 살만한 곳으로 데려다 주기만을 바라는 성향이 강한 것이다. 
 

사람들이 추종하려는 심리를 보여주는 사진

 
'내가 뭘 알겠나? 나는 소소한 일상을 살테니, 중요한 일들은 잘 아는 사람들이 잘 해 주세요' 하는 심리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면, 약장사들(?)이 난무한다. 너도 나도 자기 약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한다. "내가 너희를 행복의 나라로 이끌겠다" 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뽑아놓고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허풍과 기만이었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다음 번에 잘 뽑아야지' 라고 마음 먹어도, 멋진 영웅에 의지하려는 그 근본 심리가 바뀌지 않으면 더 세련되게 위장한 약장사들에게 또 기만당한다. 약장사들 기법의 발전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놀기 때문이다.
 

2. 자신에게 천부인권이 있음을 인정하기

국가나 통치자가 국민을 억압할 수 없는 제도적 틀은 어느정도 갖추어 졌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 틀에 감지덕지하고 있을 시기는 지났다. 적어도 대한민국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에게 천부인권이 있음을 깊히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사고하고 행동해 나가는 것이다. 
 

용기와 책임

 
이런 각성(覺性)은 쉽지 않은 변화다. 책임감도 있어야 하고 용기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전환이 지연될수록 민주주의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참 성가신 일이다.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신경써야 할 것도 늘어나고, 비판적 사고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선택하지 않는 것은 천부인권을 부여받은 존재로서 일종의 게으름이다. 
 
어릴 때와 달리, 성인이 되면 살피고 건사해야 할 일들이 많다. 시민으로서의 역할도 그렇다. 시민의식이 성장한 이들은, 해야할 일도 늘어난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자신의 행복과 성장도 따르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도 배가된다. 이것이 인간에게 천부인권을 선물로 준 진짜 이유일 것이다.
 

민주주의에 '좋은 영웅' 이란 없다. 

이제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은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그럴싸한들 틀에 불과하다. 그 틀 안에서 각 개인이 개성있게 펼치는 삶이 꽃피워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천부인권은 완성된다.
 
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하여 300여년이 흐른 지금도 독재국가가 여전히 많다. 세계 198개의 나라 중, 중국이나 소련, 북한 등 적어도 1/4 은 확실히 독재국가다. 민주국가라고 하는 나라들도 기반이 허약한 나라들이 많다. 제도적 틀만 겨우 세운 나라들이라는 뜻이다. 
 
제법 성장한 민주주의 국가라 할지라도, 국민들 대다수가 먹고사는데 모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자기들을 이끌어줄  영웅을 기다리며 스스로 '천부인권 펼치기' 를 등한시하면 민주주의는 위기가 찾아온다. 이것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 
 
그리고 설령, 한때 좋은 영웅이 나타나 한 나라를 잘 이끈다 해도, 이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어쩌면 사람들의 게으른 타성을 더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맛본 사람들은 또다른 영웅을 기다리며 자신의 권리행사를 유예할 것이다. 사람들을 계속 잠재우기 때문에, 차라리 나쁜 독재보다 나쁠 수 있다.
 
스스로 영웅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