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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정과 베켄바우어, 그들이 진실을 대하는 태도

알깨남 2024. 1. 10. 19:00

나는 손흥민도 좋아하고, 그의 아버지 손웅정도 좋아한다.
손웅정이 그 동안 보여준 올곧은 태도를 보면, 우리 시대에 그가 있어 고맙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 그가, 이번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한국은 우승하면 안된다' 라고 말했다.

독일 축구 영웅 베켄바우어가 며칠 전(1. 7) 세상을 떴다.
훌륭한 축구인이었던 그에게도 아쉬운 점이 있다. 

 

그을린 피부, 이마와 볼에 깊게 패인 주름, 꺼뭇꺼뭇한 수염, 손질할 필요조차 없는 짧은 머리, 말할 때마다 힘이 들어가는 미간.....  얼굴로만 보면 농부보다 더 농부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흠칫하게 된다. 짱짱하다. 눈빛도 흔들림이 없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손웅정....

손흥민의 아버지. 이제는 웬만한 대한민국 국민이면 그의 얼굴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가 아들을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키워낸 에피소드들은 많은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전파를 탔다. 기본을 중시하던 그의 축구철학, 그리고 아들에 대한 헌신을 초인적으로 실천한 그야말로 불굴의 의지 그 자체처럼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그런 그가 최근에, 아시안컵 축구대회(1.13~)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대표팀에 악담(?)을 던졌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훌륭한 멤버로 진용을 갖추고, 64년만에 도전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 거기에 자신의 아들도 포함된 팀에게 말이다. 1월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번 아시안컵에서 우승하면 안됩니다."
 

처음 이 인터뷰 기사를 핸드폰으로 접했다. 당시 기사 제목은 앞부분은 생략된 채 '이번에 우승하면 안된다' 가 부각되었다. 의아했다. 평소 손웅정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는 짐작했다. 그러나 당황스러웠다. 내 안에서는, '아시안컵에는 일본도 참가하잖아?, 그런데 왜?' 라고 당연하다는 듯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가 이렇게 말한 취지는....

그의 취지는 이렇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우승을 간절히 바라지만, 지금과 같은 축구 운영 시스템을 가졌는데도 우승해버리면, 그 결과에 도취해 변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이것은 한국 축구 미래에 오히려 독이 될 것' 이라는 주장이다. 마지막에 이런 말도 덧붙인다. '어떻게 일본을 한 번 앞선다고 해도. 그건 자신을 속이는 행위에 불과하다' 라고.

 
나는 축구경기를 보고 즐길 줄은 알지만, 선수들 육성 시스템이나 축구계가 돌아가는 것은 잘 모른다. 그러니 다른 나라의 축구 운영 시스템은 더욱 알리도 없어, 이들을 비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손흥정의 말을 얼마나 신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그동안 보여준 몇가지 사례들, 특히 한국 축구에 보낸 몇몇 쓴소리들을 익히 알고 있다. 유소년 축구 때부터 코치들이 이길려고만 생각해서, 뼈와 근육이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선수들에게 가르쳐서는 안될 기술을 가르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성인이 되면, 몸 여기저기에 부상이 불거지고 최고 선수들끼리 맞붙는 경기에서는 기본기 부족이 그대로 노출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번 카타르 월드컵때는, 손웅정 개인 사비로 물리치료사를  지원했다. 선수들 묶는 호텔에 치료사를 체류시키면서 대회기간 내내 근육을 풀어내느라 그들 손이 퉁퉁 부어올랐다고 알려졌다. 이 마저도 몇몇 선수들의 SNS 때문에 겨우 살짝 노출되었을 뿐, 그가 내세우려 한것이 아니었다. 한국 축구에 대한 그의 애정은 이만하면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인다. 

그래서 그가 쓴소리처럼 펼쳐놓은 것들이, 진실에 기반한 보석 같아 보인다. 
 

베켄바우어...

차범근이 독일에서 활약한 1970년대, 어린 나는 MBC에서 밤 늦게 녹화로 방영하는 분데스리가 경기를 챙겨보았다. 그 방송 끝나면 애국가가 나오고 삐~ 하면서 방송종료 되었다. 그래서 당시의 독일 유명 축구선수들 이름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중에 베켄바우어가 있다. 
 

베켄바우어, 선수시절과 차범근과 만나는 장면

 
베켄바우어는 독일 축구 영웅이다. 별명이 황제라는 뜻의  '카이저' 다. 독일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선수로서 그리고 감독으로서 월드컵을 우승했다. 독일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그가 지난 1월 7일 세상을 떠났다.

베켄바우어가 선수와 감독으로서 독일 축구를 이끌던 시절, 독일 축구계는 금지약물 이슈로 가끔씩 소동을 치뤘다. 훗날 알려진 바에 따르면, 독일은 1950년 스위스 월드컵 우승때부터 약물을 사용했다. 나치 독일이 2차대전 동안 병사들에게 약물을 사용하면서 얻은 효과를 스포츠에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2013년에 독일 정부는, 1950년대 이후 거의 25년 동안 국가주도의 도핑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스스로 발표했다. 특히 1976년 올림픽에서는 총1,200여회의 약물 주사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이런 용감한 자백(?)은 메르켈의 독일정부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베켄바우어도 독일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수시절에 그것이 옳지 않다고 느꼈지만 너무 많이 퍼져있어서 당시에는 크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1984년부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때까지 대표팀 감독이었다. 그가 감독 시절, 독일 축구계는 또한번 약물소동을 겪었다. 당시 국가대표 선수 '슈마허'가 축구계에 만연한 약물사용을 책으로 출판해버린 것이다. 코치들은 약물사용을 권하고, 선수들은 대부분 응한다. 그래서 자신도 계속 사용 헸다고 고백했다. 발칵 뒤집혔다. 슈마허가 언급한, 선수들에게 약물사용을 권하거나 묵인한 사람들 중에는 베켄바우어도 포함될 터였다. 

베켄바우어는 자의반 타의반 슈마허를 대표팀에서 쫒아냈다. 하지만 1년후 다시 복귀시킨다. 나중에 슈마허의 말을 빌리면, 베켄바우어는 외부 압박에 못이겨 자신을 쫓아냈지만, 개인적으로는 자기를 지지해주었다고 했다. 물론 이 과정은 당사자들의 주장만 있으므로 실체적 진실은 알 수가 없다. 

독일이 국가적으로 도핑을 획책하던 시절에 대표선수를 지낸 베켄바우어가, 선수 시절에는 그 관행에 반기를 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국가대표 감독을 하면서 독일 축구계 중심에 섰을 때다. 약물의 위험과 부당성을 충분히 알았기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에도, 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그는 승부에 온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손웅정은 두렵지 않았을까?

아무리 한국 축구에 대한 애정이 크다 한들,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우승하면 안된다' 는 워딩을 사용하여 인터뷰할 수 있는 축구인이 몇이나 있을까? 이영표가? 박지성이? 바른 말 잘하기로 알려진 이천수가? 글쎄, 난 못하리라 본다.  물론 꼭 그 말을 해야 한국축구에 대한 애정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스타일의 사랑 방식이 있을 테니까. 

손웅정 같은 경우는, 그의 발언이 악마의 편집을 통해 한순간에 매도될 위험도 있었다. 그동안 그가 한국축구에 가한 팩트폭격으로 불편한 사람들도 꽤 있었을테니, 그의 진의를 잘 알면서도 그를 대변해 줄 우군이 적을 수도 있었다.   

슈마허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아름아름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분위기, 더군다나 코치들도 권유하는 상황에서, 그 사실을 폭로하면 배신자, 간첩, 잘난체 하는 사람 등으로 매도될 상황에서, 그는 두렵지 않았을까? 동업자 정신(?)으로 알아도 모른척, 보아도 못본척 흘려도 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나는 손웅정이 지적하는 한국 축구 시스템의 문제를 잘 알지 못한다. 또 슈마허가 폭로할 당시의 독일 축구계 내막도 물론 잘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확인한 진실에 대해, 용기있게 임한 그들의 태도는 인정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들이라고 두려움이 없겠는가? 망설여지지 않았겠는가?
 

진실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진실을 알면서도 단지 주위의 시선 때문에 대세에 묻어간다면, 자신에게 가장 부끄럽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손웅정과 슈마허가 존경스럽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스포츠계에서, 자기가 알게된 진실을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라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여러 영역에서 진실을 말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안타깝게도 고초를 당할 때가 많았다. 죽기까지 했다. 갈릴레오가 법정에서는 재판관이 원하는 답을 해주고, 나오면서 혼자 말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했다는 에피소드는 많은 걸 시사한다. 지금은 사회가 문명화되어 이럴 가능성이 확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진실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다. 사회적으로는 더 그렇다. 크고 작은 진실을 용기있게 펼쳐내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는 더 건강해질 것이다. 용기있게 먼저 말하지 못했다면, 먼저 용기있게 말하는 사람을 응원하고 그를 북돋워주면 좋겠다. 
 

진실과 용기

 
글을 쓰고 보니, 고인이 된 베켄바우어를 비판만 한 것 같아 맘이 편치는 않다. 축구인으로서 최고의 성과를 낸 인물임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약물문제만 하더라도, 슈마허 사태 이후에는 근절의지를 여러번 표명했다. 게다가 수려한 외모와 기품있는 프러시아 귀족같은 그의 모습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에 충분했다. 그의 명복을 빈다. 

그럼에도, 나는 농부보다 더 농부같은 손웅정의 토속적인 얼굴에서 더 매력을 느낀다고 말해야겠다. 아들 손흥민이 '좋아하는 축구를 행복하게 건강하게 오래하는 것이 자신의 최고 소원' 이라고 말하는, 악착같이 최선을 다하되 정작 승부에는 한발짝 떨어져있는 그가 좋다. 그리고 자신이 충분히 경험한 축구분야에서 자신이 확인한 진실을 말해야 할 때, 거침없이 표현하는 그의 용기는 더욱 좋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眞理)나 진실(眞實)이나 모두 'Truth' 다. 본질상으로는 같다는 얘기다. 작은 진실은 작은 해방을 주고, 큰 진실은 큰 해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의 작은 진실을 살리는데 작은 용기를 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