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기술이 매우 딥(deep) 해졌다.
기술은 양날의 칼이다. 잘 다루지 않으면 상처가 난다.
세계적으로 유난히 선거가 많은 2024년, 진짜와 거짓을 더 잘 분별해야 하는 과제가 시민들에게 주어졌다.
화약에 얽힌 어린시절 에피소드
어릴적 이웃집이 사진관이었다. 놀러갈 때마다 사진 찍는 모습을 즐겨보았다. 1970년대 당시에는 실내에서 사진을 찍을 때, 약한 조명을 보완하고자 마그네슘 가루를 작은 철판에 올리고 펑 터뜨려 순간 환하게 하고 셔터를 눌렀다. 마그네슘에 전기 스파크를 일으키면, 폭발하면서 빛을 내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여섯 살 어린 눈에 굉장히 신기했다. 그래서 그 회색가루를 조금씩 몰래 모은뒤, 어느날 집 계단 밑에서 쭈그려 앉아 장난을 쳤다. 처음에는 소량의 가루를 얇게 흩뿌려서 성냥으로 불을 대보았다. 타다다닥 하면서 불꽃이 튀는 모습이 재밌었다. 그러다가 욕심이 생겼다. 급기야 가루들이 제법 모아진 곳에 성냥불을 갖다 댔다.
순간 펑 하더니,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는 눈앞의 세상이 커다란 백색 태양으로 휘황해졌다. 귀도 멍했다. 놀란 나는 정신없이 현장을 이탈했다. 머리카락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눈썹과 머리카락은 화염에 그을려 빠삭거렸다. '아, 큰일났구나', 가슴이 콩당콩당하는데, 아래를 보니 손가락은 화상으로 피부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깜짝 놀라 달려온 엄마는 급하게 소주로 내 손가락을 소독하면서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쭈그린채로 가까이 보고 놀았기에 눈 실명하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었다. 그 후로 손가락 피부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거즈로 감싸고 매일 소독하면서 한달을 고생했다.
화약가루는 어린아이가 안전하게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 위험한 것이었다.
뜨거운 딥페이크 기술
2024년은 무려 76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슈퍼선거의 해' 라고 한다. 대만,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선거가 있고 일본도 자민당 총재를 선출한다. 유럽의회도 의원을 뽑고, 우리나라도 4월에 국회의원 선거를 치룬다.
선거가 있는 때면, 가짜뉴스가 난무한다. 올해는 여기에다 새로운 강적이 등장했다. 바로 딥페이크(DeepFake)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기술이 조악하여 진짜인지 페이크인지 금방 구분했는데, 이제 눈과 귀만으로는 진위를 판별하기 힘들 정도가 되어 버렸다.
유명인의 신체를 도용해 만든 딥페이크 포르노가 이미 확산된지 오래다. 그런데 딥페이크 앱이 상용화되면서 지금은 이런 류의 작업을 일반인들도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은 딥페이크 기술로 한층 더 고약해질 것 같다. 문자 텍스트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깜빡 속는데, 진짜같은 음성과 영상을 동반한 보이스피싱은 더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권(利權)이 걸린 인간의 게임 중 가장 큰 판이 정치판인데, 여기에 딥페이크 기술이 끼어들지 않을까? 그래서 올해 대선이 있는 미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 벌써 바이든의 모습과 목소리를 딥페이크 한 영상이 많은 유권자들에게 살포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관심과 진영간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선거판에서,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혼란스러워질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경제학의 유명한 문구,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 는 말처럼, 자극적인 가짜 콘텐츠들이 득세하고 진짜는 목이 졸린채 비명만 지르고 있을 수도 있다. 이른바 '신뢰와의 전쟁' 이 시작된 것이다.
최근의 눈부신 과학발전의 성과들, 예를 들면 로봇이나 AI, 그리고 딥페이크 같은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는 인류에게 너무 버거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안전하게 다루기에는 아직 위험한 기술을 우리가 너무 일찍 가져버린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기술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칼은 수술할 때 쓰면 사람을 살리는 도구지만, 살인할 때 쓰면 흉기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기술은 글로벌 통신과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가능케 하지만, 핵폭탄을 실어나르는데 쓸수도 있다. 드론은 물류나 농업, 재난 구조 등에도 활용될 수 있지만, 테러와 요인 암살, 불법 사생활 감시에도 쓰인다.
딥페이크 기술도 유용한 분야가 많다. 영상을 만들 때 정교한 특수효과를 가능케 하고, AR·VR 콘텐츠도 훨씬 실감나게 제작할 수 있어 교육시스템이나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퀄리티도 높일 수 있다.
기술 그 자체는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다. 도구일 뿐이다. 사용자가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다. 그래서, 좋기도 하지만 리스크도 역시 큰 도구일수록, 사용자의 수준 높은 의식과 현명함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섯 살의 나에게 마그네슘 폭약가루는 너무 위험했다. 내가 경험한 뜨거운 맛은 치러야 할 댓가였다. 첨단 기술의 결과물들이 우리 사회의 폭약가루가 되지 않아야 한다. 도구가 예리해진만큼, 그것들을 잘 다룰수 있는 사회적 역량도 함께 성숙해갔으면 좋겠다.
반대편을 시원하게 비판하고 멋지게 조롱하는 것에 박수를 보내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예리한 도구를 어느 한쪽 누군가는 쓰는 상황으로 에스컬레이트된다. 토론하고 포용하고, 대립된 의견을 가진 상대도 존중하는 태도가 더 가치있게 여겨지는 사회로 가면 좋겠다.
적어도 나에게 지워진 분량만큼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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