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호주의 아시안컵 8강전은 멋진 경기였다. 양국 선수들 모두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경기는 우리가 이겼지만 호주 선수들의 전술과 팀웤, 그들의 스포츠맨십도 훌륭했다.
우리 선수들 모두 칭찬받을만 했다. 힘이 바닥난게 역력한 손흥민, 그런 상황에서 보여주는 그의 처절한 움직임과 리더다운 고품격 플레이, 이강인의 영리함, 최신형 철갑전차 같은 김민재 등등.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익히 알던 바였고, 경기전에 기대했던 그들의 기량이었다. 오늘 나의 씬스틸러는 황희찬이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는 장면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서다.
13년 전인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한국과 일본이 4강전에서 만났다. 연장전까지 2:2로 맞서다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결과는 한국의 1,2,3번 키커 모두 골을 넣지 못해 3:0으로 일찍 끝나버렸다. 당시 한국팀 주장은 레전드 박지성, 하지만 그는 키커로 나서지 않았다. 수원공고 3학년때 결승전에서 본인의 실축으로 우승을 놓친 트라우마가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이번 아시안컵 역시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다. 호주와의 8강 경기 종료 2분전, 1:0으로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우다가, 페널티킥을 얻었다. 여기서 못 넣으면 짐싸야 한다. 잘해야 본전, 실패하면 두고두고 트라우마로도 남을 상황이었다.
이 때 그가 자원해서 나섰다. 황희찬.
누군가는 차야 할 상황, 단순히 킥 능력이 좋다고 그 상황을 지배할 수 없다. 현장에서 3만명의 관중이 뿜어내는 기운을 이겨내야 하고, 무엇보다 자기 머릿속에서 수없이 스쳐갈 실축과 실축 이후에 벌어질 심란한 일들의 방해를 진정시킬 수 있어야 한다.
마침내 공을 페널티 스팟에 놓고, 대여섯 걸음 물러나 공을 노려다 보고 선다.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길게 느껴진다. 그가 실축하기를 바라는 수 백만명의 정신적 교란과, 그가 성공해주기를 바라는 또다른 수백만명 응원의 기운이 뒤엉킨 그 순간, 황희찬은 고독하게 자기를 진정시키면서 서있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을 것이다. 연습한대로 오른발 얇은 인스텝킥으로 공의 정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 면을 맞춘다. 그러면 공은 골문 왼쪽, 골키퍼가 측면 점프를 해서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적정한 높이로 날아갈 것을 마음속에 그린다.
드디어 그가 출발한다. 온 몸이 쫄깃해진다. 공은 포탄처럼 정확한 궤적으로 빠르게 날아가 골키퍼 손의 방어 한계보다 조금 높은 곳을 비행하여 통과했다. 그의 킥에서 거침없는 무림고수의 공력(功力)이 느껴졌다. 나중에 느린화면으로 몇번 돌려보았는데, 임팩트하는 순간 오른쪽 발목에 힘과 의식을 무심( 無心)으로 집중시켰다. 예술이었다.
황희찬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울버햄튼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다. 손흥민에 가려서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오늘 그의 플레이를 보면서, 그가 사자들이 뒹구는 프리미어리그라는 정글에서 그정도의 활약을 할만한 깜냥임을 확인했다.
적어도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선수였다.
브레이브하트(Braveheart)
황희찬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태도를 '브레이브하트' 의 한 사례라고 하면 너무 오바일까. 난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꺼이 책임을 지려고 한 그에게 '브레이브하트' 라는 칭호를 주고싶다.
내 삶을 돌아보면, 난 Braveheart 일때보다, 겁쟁이(coward)나 이기적인(selfish) 인 때가 많았다. 남들이 어떻게 볼지 모르나, 내 행동 저변의 심리는 내가 잘 안다. 나는 비겁하거나 이기적인 결정을 많이 했다. 나서야 할 때 많이 주저했고,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도 누르는데 익숙했다. 설령 떠밀려 나설때에도, 그 상황을 지배할 내공은 턱없이 부족했다.
난 속칭 범생이였다. 범생이들은 관리하기 쉽다. 그래서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범생이가 되라고 여려 규율을 미덕처럼 권장한다. 이를 잘 따르는 자에게 적절한 보상도 해준다. 이것이 전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습성이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할 때 그의 인생은 값싼 복사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각자의 개성과 창의력을 발휘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험을 권장할 때 더욱 역동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역동성이 우리 사회를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엔진일 것이다.
나 또한 내가 있는 곳에서 브레이브하트이고 싶다. 그리고 나와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에게, 그들도 브레이브하트가 될 수 있도록 환경도 만들어 주고 영감을 주고 싶다.
부라보(Bravo) ! Bravehe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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