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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뿌리 생각' 을 생각하다. ① 천부인권

알깨남 2024. 1. 3. 02:40

기록된 역사를 본다면, 민주주의는 최근에 나온 체제다.

그렇다면, 이런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낳게한 근본적인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이 겪는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그리고 우리가 더 좋은 시민의 한 사람이 되는데, 이 질문은 의미있는 생각거리가 될 것 같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열망하던 20세기 후반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뜨거웠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본궤도에 올라섰다고 여기기 때문에,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서 또다시 토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꼭 그럴까? 

 

사람들이 만든 모든 제도는, 시간이 갈수록 형해화(形骸化) 되는 경향이 있다. 취지는 사라지고 앙상한 형식만 남을 수 았다는 얘기다. 주로 전통적인 것들이라고 인식되는 관습이나 제도가 이런 경향을 띤다. 새해에 세배하는 풍습도 세뱃돈 주고 받는 형식만 부각된다면 형해화 된 것이다. 여러 종교의 의식들도 오랜 세월이 지나, 왜 하는지도 모르고 외형만 유지한다면 그 역시 형해화된 것이다. 

 

앙상항 건물 골조만 남은 장면

 

민주주의도 그렇다. 그저 '국민이 투표해서 대표 선출하고, 그 선출된 자들이 법 만들고 집행하면 민주주의다' 라고 여기면 형해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이 겪는 위기는 민주주의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 : 민주주의는 참 손이 많이가요)

 

그래서 몇 번의 연재글을 통해, '민주주의를 낳게 한 뿌리 생각' 을 생각해 보려한다.  본래 제도의 취지를 알면, 길을 잃을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첫 번째 포스팅은 '천부인권(天賦人權)' 이다. 

 

민주주의의 간략한 역사

인류 역사는 약 200만 년이다. 그 중에 기록된 역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이 출현한 이후부터 약 5,000년 정도다. 여기에서 민주주의 체제의 역사는 길게 잡아 300년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민주정(democracy)이나 공화정(republic) 이 잠시 등장한 바 있으나 중단돼 버렸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이 민주주의는 아주 최근에 나온 체제인 것이다. 원래부터 이러지 않았었는데, 우리 삶의 틀을 지금과 같은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각성(覺性)이 있었다는 말이다.

 

17세기 이전까지 유럽 사회는, 왕과 귀족 그리고 카톨릭 교권 세력들에게는 살만했겠지만, 평민들은 권력 엘리트들의 특권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아야 했다. 이런 경향은 비단 유럽뿐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인간은 더디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깨어난다. 그리고 이것은 기존의 체제를 변혁하려는 압력이 되어간다. 그러다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분출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물꼬를 텄던 중요한 사건은, 17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 18세기 프랑스대혁명, 그리고 미국 독립선언이다. 모두 시민혁명이었다. 이런 혁명적 사건을 계기로 군주나 귀족들의 권력이 제한되고, 공화정과 같은 민주적 제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바스티유 습격 모습, 미 독립선언문 작성 그림
좌 : 프랑스 혁명 당시 바스티유 감옥 습격 장면,  우 : 미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있는 토마스 제퍼슨, 프랭클린

 

천부인권(天賦人權) 선언

이런 시민혁명의 밑바탕에 있는 사상적 뿌리가 '천부인권' 사상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와 평등 같은 권리를 신(神)으로부터 부여받은 존엄한 존재이고, 이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시민의 영향력을 단순히 확대하고자 했던 것에서 훨씬 나아갔다.

 

즉,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의 권리는 왕(王)도 귀족도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 권리임을 선포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권리는 왕이나 귀족이나 국가가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독립 선언(1776)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백한 진리로 인정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인간에게 부여했으며, 생명권, 자유권, 행복 추구권은 이러한 권리에 속한다. 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인간은 정부를 조직하였으며,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국민의 동의로부터 나온다. 어떤 형태의 정부라도 이러한 목적을 훼손하는 경우, 그러한 정부를 바꾸거나 없애고 국민의 안전한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권리가 국민에게 있다.

 

프랑스 인권 선언(1789)

제1조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


이 천부인권 사상은 1948년 UN이 제정한 세계인권선언문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당연히 우리 헌법에도 녹아들어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렇게, 우리도 천부인권 조항을 헌법의 최고원리로 반영하였다. 그러니까 17~8세기, 민주주의가 태동하였던  당시의 뿌리 생각이 우리 헌법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면 갖는 절대적 권리

민주주의를 낳게 한 뿌리생각은 이런 것이다. 

 

"사람은 그 자체로 귀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주어졌다.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존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권력자나 부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가난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 모두 존엄하며 평등하다.

차이는 단지 외양일 뿐, 그들이 갖는 본질적 가치는 동등하고 그렇게 대우받아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그렇게 되도록 지원할 의무를 가진다. 

 

이런 민주주의의 뿌리 생각은, 비단 정부와 국가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각 개인도 이런 자각(自覺)을 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형해화 되지 않고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존엄과 자유에 기초하여 각자가 개성을 펼치며 모두의 행복과 번영을 추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또한, 각 개인들끼리 맺는 관계에서도 이 천부인권의 '뿌리 생각'은 적용되어야 한다. 부부간에도, 부모와 자식간에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직장에서 상하동료간에도 이 인식이 관계의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힘있는 자가 힘이 미약한 자 위에 군림하고 콘트롤하려 해서는 안되고, 사람들을 여러 외적인 기준에 따라 차별해도 안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그럴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다.

 

이것이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200만년을 살아오면서 발견한 현재로서는 최고의 원리다. 이런 생각과 믿음이 우리 민주주의 시스템 구석구석에 살아 숨쉬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