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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버지의 해방일지」, Let it go.

알깨남 2023. 12. 27. 21:59

정지아님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를 많은 이들이 읽었다. 
이 책이 왜 이렇듯 독자들을 파고들 수 있었을까?
소설적 구성, 남도의 사투리로 재미있게 풀어가는 압축된 현대사와 삶의 얘기들이 석류알처럼 잘 박혀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웬지 이 설명만으로는 중요한 뭔가가 빠진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우리는 사실, 용서하고 싶었던 것이다.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여운이 깊게 남는다. '구례'나 '곡성' 같은 내게 향수어린 지명도 나온다. 작가님과 동일한 시대를 살아온 나는, 열 살 즈음까지 곡성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자주 놀러갔다. 소설에 나오는 그 말씨들이 생생하다. 내 큰 아버지, 큰 엄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들이 쓰셨던 똑같은 사투리들 때문인지, 소설속 인물들이 내 머릿속에서 살아움직이는 것 같았다.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고향이 남도쪽이고 작가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으니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렇지 않은 배경의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큰 공감이 됐다는 게 선뜻 이해 되질 않았다.  우리 현대사를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로 재미있게 압축적으로 묘사한 것은 분명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전직 빨치산의 죽음을 모티브로 한 이 책이 30만권이나 넘게 팔릴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끈 이유가 의아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은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건드린 것일까?
 

원망과 이해, 그리고 용서

소설에는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의 딸 '아리' 도 빨치산의 딸이란 주홍글씨를 안고 산다. 아버지의 좌익 전력으로 인해, 작은 아버지와  사촌 친척들까지 숱한 불이익을 천형(天刑)처럼 받아야 했다. 그들의 눈에 아버지 고상욱이란 존재는 자신의 앞날을 망친 원수였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 원망을 받아내면서 고향 구례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낯선 사람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들을 자기 일보다도 더 발벗고 나선다. 민중의 삶을 우선시하는 사회주의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보상이나 인정을 잘 받지는 못한다. 오히려 배신을 당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한다. "사램이 오죽했으면 글겄냐~" 라고 하면서... 이런 아버지를 보는 딸은 그런 애비가 더 밉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그제서야 인간 고상욱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를 원망했던 자들도, 그가 죽자 자기 안에는 꼭 원망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발견한다. 살아있을 때는 미워하는 마음이 커서 보지 못했던 또다른 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인간 고상욱이 펼쳐낸, 사람을 향한 올곧은 사랑이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에서 하나씩 베일을 벗는다.  이윽고 딸도 아버지와 화해한다.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의 용서를 빈다.
 

우리는 사실 용서하고 싶다. 

삶을 살다보면, 누군가 한 두사람 미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가끔씩 그 사람 입장에 서보면 이해할 법도 하다. 하지만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것은 늘 어렵다. 내가 더 힘들었었고, 그래서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나고, 용서도 그가 먼저 구해야 마땅하다는 목소리가 쩌렁하게 울려나온다.
 
다들, 이런 방식으로 그 꼬인 관계를 풀지 못하고 긴 세월을 보낸다.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죽음 앞에서나마 그 갈등이 평화로 전환되는 이야기다.
 
이 소설이 가진 단단한 힘은 바로 용서와 화해에 있다. 독자들은 아버지와 딸 그리고 친척들간에 쌓였던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앙금이 녹는 모습에서, 자신도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향한 미움덩어리들 일부가 녹아내림을 경험할 것이다. 고상욱씨의 말처럼 "사램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라는 이해가 가슴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딸 '아리' 가 느낀 평화를 함께 공유한다. 
 
더 나아가, 이 '용서' 를 꼭 누가 죽어나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한다. 까짓것 '그냥 하면 되잖아' 라고 용기도 솟는다.
 

용서, Let it go.

어떤 사람과 갈등관계에 놓이면 넝쿨처럼 서로를 옭죄게 된다. 그 옭죔은 자기가 자기를 매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는 상대를 향한 것 같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자기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용서라는 말의 헬라어는 '아피에미 ἀφίημι' 이다. 이는 "놓아주다" 라는 의미다. 'let it go' 해 준다는 말이다. 흘러가야 할 것들을 붙들고 있는 자기를 해방시켜주는 것이 바로 용서, 'let it go'다
 

겨울왕국, 렛잇고, let it go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속에 아직도 용서가 잘 안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겨울왕국의 엘사처럼, 이제 난 과거의 얽메인 내가 아님을 선포한다. Let it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