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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확고해? 그거 다 좋은 걸까?

알깨남 2023. 12. 8. 08:40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드디어 완독했다. 흔히들 '벽돌 책' 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만큼  두껍다. 두꺼운 책은 다 읽고 나면, 일단 기분좋은 성취감이 든다. 코스모스도 예외는 아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책 표지
칼 세이건의 모습

 

땡큐! 칼 세이건과 그의 친구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난 뿌듯함은 책의 분량에 기인한 것이기 보다는, 수십억년을 꿰뚫는 칼 세이건의 통찰과 흥미로운 사례들, 그 바탕에 흐르는  따뜻한 인류와 지구에 대한 사랑이 읽는 내내 나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 유산을 세상에 탄생시켜 준 그와 그의 동료들이 고마웠고, 책에서 소개 된 인류발전의 디딤돌이 된 여러 인물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들은 집단적인 따돌림과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발견한 사실들을 용기있게 주장해 주었다. 그런 이들이 있었기에 인류는 이만큼 진보했었던 것이다. 

 

인류의 진보는 인류가 가진 철옹성 같은 편견을 깨뜨림으로써 가능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구 중심의 우주관이다. 이 틀이 깨지면서 종교적 속박에서도 조금 숨통이 트였고, 우리의 사고(思考)도 확장되었다. 신이 지구를 만들고, 지구를 위해 해와 달과 여러 별들을 배치하고, 그 안에 사는 인간들에게 어떤 규율을 만들어 엄격히 지키게 하고, 안지키면 지옥행이라는 그 숨막히는 일련의 프레임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개성과 창의성도 존중되는 토양이 만들어 질 수 있었다. 

 

과학하는 태도

이 과정에서 중요한 방법론이 등장했다. 바로 과학이다. 과학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발견된 사실이 기존의 가설과 믿음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 가설과 믿음을 기꺼이 수정한다. 기존의 믿음을 고수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한 것 같지만, 이런 태도를 취하기가 쉽지 않다. 

 

토마스 쿤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데는 갈등과 저항이 있다고 했고, 쇼펜하우어도 새로운 진리가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조롱과 반대에 부딪힌다고 했다. 이런 말들은 인류의 오랜 역사를 살펴본 결과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이런 과학하는 태도를 적용하지 못하는 사례를 쉽게 발견한다.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로 진영화 된 지금, 어느 한 쪽에서 내는 주장에 대해 그것이 타당한지를 살피기 전에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고 보는 많은 사람들을 쉽게 발견한다.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데도, 이런 과학하는 태도가 잘 작동하지 않음을 나 자신도 자주 경험한다. 

 

'과학하기' 에 대한 칼 세이건의 견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는 이런 ‘과학하기’ 에 대해 그의 견해가 분명하게 잘 드러난다. 

 

" 이미 제시된  지혜에 대한

끊임없는 재평가야말로 과학하기의 요체다 "

 

“진정한 의미의 용기는

자신의 편견이 밖으로 드러나는 한이 있어도

또는 찾아낸 결과가

자신의 희망과 근본적으로 다를지라도

코스모스의 조직과 구조를 끝까지 탐구하여

그 깊은 신비를 밝혀내려는 이들의 것이다”

 

“과학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도구다.

과학에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교정할 줄 안다는 것다.”

 

“과학하기에는

우리가 지켜야할 규칙이 있다.

첫 번째는 신성불가침의 절대 진리는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은

무조건 버리거나 일치하도록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열린태도야 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참 겸손의 토대일 것이다. 내가 절대 옳을 수 없으니, 타인과 세상을 내 가치관의 틀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고, 존중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게 된다. 설령 그들이 미흡할지라도 저급하다고 심판하려기 보다는, 그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기꺼이 돕는다.

 

 

믿음이 확고하다는 말은? 

칼 세이건의 '과학하기' 에 관한 부분들을 읽으면서, '믿음이 확고한 사람들' 에게 내재하는 위험성을 생각하게 됐다. '믿음이 확고하다' 는 말은, 어떤 경우에는 '꽉 막혔다' 라는 말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종교에 대한 신념,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신념, 사람사는 도리에 대한 신념 등에서 유난히 강고한 분들을 보게된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원래 그런거야~' '원래 그러도록 되어있어~' 라는 식의 옷을 입고 있다.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다.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들을 잘 따져보면 정말 허망하기 짝이 없는 신념들도 많다.

 

2017년에 '진도개를 믿는 사람들' 이라는 내용의 신문기사가 있었다. 이유는 진도개가 귀신을 알아보는 영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는 것이었다. 이 포인트에 꽂히면, 다른 관찰 결과가 그 분들의 인식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이 더 큰 조망을 얻기 위해서는 '과학하기의 태도' 가 꼭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우리 인식필터의 결과다. 그 인식 필터는 특정 문화권에 살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에 의해 형성된다. 그리고 그 경험과 지식이란 것은, 이 넓디넓은 우주에서 아주 티끌만한  것에 불가하다. 이를 인정하고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것이 '과학하기' 이고, '겸손' 이다.

 

소크라테스도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현명하다' 라고 했다. 

 


 

글을 쓰고 보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너무 좁은 부문에서만 다루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코스모스」 는 1980년에 출판되었다. 이 두꺼운 책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대중들의 사랑받는 이유를 몸소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인간을 사랑하고 인류의 미래를 염려한 참 따스했던 현인(賢人) 한 사람과의 만남이 가슴을 환하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