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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대한 거부, 그 뒤엔 ‘두려움’ 이 있다.

알깨남 2023. 11. 25. 18:27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결했을 때, 사람들은 인류라는 이름으로 연대감을 형성했다. 알파고 제조사 '구글 딥마인드' 직원들은 달랐겠지만 말이다. 이기고 지는 문제에 자기 이해관계가 걸려있을 때, 우리는 관심을 갖게 된다. 자기의 현실적 이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세상관을 입증해 주는 방향으로 승패가 결정나기를 바랜다.
 
우리는 이세돌이, 인류가 아직은 인간이 만든 피조물보다 우월함을 입증해 주기를 바랬다.
 

이세돌과 알파고 ai 바둑대결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사람들이 인류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심적(心的) 연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AI에 의해 우리의 직업이 대체되고 직장을 잃게 되고, 나아가 그들에 의해 지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있었을 것이다. 이런 공동의 적 앞에 사람들은 종교와 정파를 떠나 느슨하게 나마 잠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모든 변화에는이를 거부하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고, 그 밑바탕에는 '두려움' 이 자리하고 있음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변화를 거부한 역사적 사례들

 
15세기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책이란 모름지기 손으로 쓰는 것이 예술적이고 신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반대 분위기를 잡아갔던 자들은, 인쇄술로 인해 권위와 밥줄이 끊어질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었다. 성경 교리를 독점하고 있던 교회권력, 국민들이 깨어나 반기를 들것을 우려한 왕정 세력, 그리고 필사본 제작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던 직업 서기들이 그들이었다. 그들은 인쇄술이 두려웠던 것이다.
 
19세기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도, 많은 이들이 반대했다. 말과 수레가 주요 이동수단이었던 시절, 안전과 비용 문제 등의 명분을 들었다. 차는 너무 빨라서 많은 이들이 다칠 것이고, 또 비싸서 사치품에 가깝고, 매연과 소음도 커서 유해하다고 했다. 물론 일리 있는 주장이었지만, 거기엔 100만대 이상의 마차 영업 종사자들의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었다.
 
이런 변화에 대한 거부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이세돌 vs 인공지능 알파고' 의 올드 버전인데, 좀 더 절박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육체 노동의 달인 인간 vs 기계' 의 대결이다.
 
철도 사업이 붐을 이뤘던 1870년 미국, 많은 인력들이 터널을 뚫는데 고용되었다. 웨스트버지니아의 존 헨리는 이 일을 매우 잘했다. 그러다가 철도회사 측에서 구멍 뚫는 기계인 '스팀 드릴'을 사용하면서, 노동자들을 해고할 계획을 세운다. 일자리를 잃게 될 헨리와 동료들은 반발했다. 급기야 기계와 인간의 대결을 원했고, 그 때 헨리가 나섰다.
 

 
그들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음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직업을 보존하려 했다. 그래서 "암벽 뚫기" 대결에서 헨리가 이긴다면 노동자들의 해고를 중단해달라는 요구를 걸었다. 하루를 넘기고 반나절도 너머 지속된 대결에서, 놀랍게도, 헨리가 먼저 암벽을 뚫었다. 초인적인 힘을 짜낸 것이다. 동료들은 환호했다. 약속대로 노동자 해고는 일시 중단되었지만, 헨리는 얼마 못가서 건강악화로 사망하고 말았다.

 

두려움은 사자도 생쥐로 만든다

새로운 흐름를 거부하고 반대하는 데에는 다들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것은 모두 두려움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뿐인데, 이를 잃게 될 수 있다',  '이런 변화가 내 권력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 는 두려움인 것이다.
 
지금은 당연하지만, 여성들의 투표권 부여에도 얼마나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는지 모른다.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지 못할 것' 이라는 둥, '가정을 유지하는 것에도 좋지 않을 것' 이라는 식이었다.
 
두려움은 사물을 보는 우리 눈에 패배와 상실의 공포를 주입한다.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많은 이들이 동조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안에 이런 경향성이 있음을 경험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의 필터로 채색되어왔던 인간의 역사, 그리고 나 자신의 선택의 역사를 돌아보면,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나 역시 그럴듯한 명분으로 현상유지의 길을 택했지만, 결국 두려움에 굴복한 선택이었음을 스스로는 잘 알기 때문이다.
 
존 헨리는 당시 이웃들의 영웅이었다. 나도 그의 용기와 행동을 존경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헨리의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는다.
 

헨리가
산을 뚫느라 했던 불굴의 망치질을
자기 사고의 한계를 뚫는데 사용했더라면
그는 또다른 위대함을 시현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더 넓고 높은 조망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두려움을 뚫고
그 두려움 위로 올라설 수 있다면
나는 보다 담대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사자도 두려움이라는 안경을 쓰면 생쥐의 삶을 산다. 아마 그 생쥐는 다른 생쥐보다는 조금 힘이 센 생쥐일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생쥐는 생쥐다.
 
나와 세상사이에는 아직도 많은 두려움의 강이 있다. 오늘도 한 걸음씩  그 강을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