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모순으로 가득한 것 같다.
그러나 그 모순이라는 것은 누가 규정한 것일까?
사람이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앎이 부족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모순이나 카오스가 코스모스로 바뀔 때, 그것이 성장이다.
한달에 한번씩 독서모임을 갖는다. 이번 달 텍스트는 양귀자의 "모순" 이었다. 1998년 출간된 이후, 무려 140쇄 정도를 찍은 스테디셀러다. 이야기 구성도 좋아서 소설적 재미가 있었고, 삶을 관통하는 밀도있는 표현들을 곱씹는 맛이 있었다.
모순, 카오스(chaos)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25세 여성 '안진진' 은 대학 졸업후 조그마한 회사에 다닌다. 그녀에게는 술꾼이자 폭력을 일삼고 수시로 집을 나가는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평소에는 좋지만, 술이 그의 삶을 헝클어 놓는다. 결국 5년 전에 집을 나가더니 소식이 없다. 그녀의 엄마는 시장에서 양말을 팔며 고되고 팍팍한 삶을 억척스럽게 산다.
엄마에게는 쌍둥이 이모가 있다. 이모 남편은 능력있고 모든 것을 계획성 있게 처리하는 무결점 남편이다. 이모에게 우아하고 낭만적이며 안온한 삶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자유롭기를 바라는 이모는 늘 격식을 갖춘 남편과의 무미건조한 삶에 속앓이를 한다.
안진진에게는 두 남자가 있다.
한 명은 나영규. 유복하게 자랐고 계획성 있으며 쾌활하다. 그는 이모의 남편을 연상시킨다.
또 한명은 김장우. 궁핍한 환경에서 착하고 낭만적인 삶을 꿋꿋하게 살아간다. 웬지 술 취하지 않았을 때의 아버지를 닮았다.
안진진은 둘 사이에서 갈등한다. 더 끌리는 쪽은 '김장우' 다. 그래서 '나영규' 의 청혼을 거절하고, 자신과 삶의 궤적이 비슷하고 감성도 통하는 '김장우' 를 선택하고 결혼을 진행한다.
어느날, 갑작스레 이모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삶은 더할나위 없이 편안해 보였지만 너무 지루해서 더이상은 견딜수 없었다고, 자신은 언니인 안진진 엄마의 고달픈 삶이 부러웠다고 유서에 고백한다.
소설은 안진진의 결혼이야기로 맺는다. 그런데 결혼 상대가 김장우가 아니고 나영규로 바뀌었다. 모순이다.
소설에서 설정한 모순 구조는,
① 일란성 쌍둥이인 엄마와 이모가 살아가는 정반대의 삶이다. 부모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다는 두 자매는 결혼을 기점으로 극명한 삶의 대비를 이룬다. 엄마는 고단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이모는 기품있는 상류층 삶을 살아간다.
② 엄마와 이모의 겉보기 삶은 이모의 삶이 훨씬 좋은 것 같았지만, 행복해야 할 이모는 정작 자기 삶을 무덤속 같은 지리멸렬한 것으로 경험한다.
③ 안진진이 결혼 상대를 최종적으로 선택할 때, 자신의 스타일이 아닌 나영규를 선택한다. 이모의 지리멸렬한 삶의 틀을 제공했던 그 이모부를 닮은 나영규를 말이다.
모순이란, 양립할 수 없는 사실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어야 맞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모순이 엄존한다. 이런 모순들이 세상에 가득차 있을 때 세상은 카오스(chaos)로 보인다. 이해할 수가 없어 가슴이 답답해진다.
찰리 채플린의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라는 말도 일종의 모순이지만, 우리는 이 말의 진실을 어느정도 이해한다. 삶은 이렇게 알쏭달쏭하다.
작가는 안진진이 김장우가 아닌 나영규를 택한 후, 마지막 페이지에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라고 쓴다. 이것이 작가가, 안진진을 통해 보여준 이 모순적인 삶에 대처하는 해법이다.
모순과 카오스는 누구 기준인가?
어떤 상황을 모순이나 카오스로 규정하는 것은 당연히 사람이다. 인식 주체에 따라 어떤 상황이 이해되기도 하고 모순으로 보이기도 한다. 금속은 딱딱하다고 알고 있는 사람에게, 흐물거리는 수은이 금속이라는 사실은 모순으로 보일 것이다.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미립자의 세계에서는 우리에게는 분명 모순으로 간주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진다.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라거나, 서로 상호작용했던 두 개의 양자를 은하의 거리만큼이나 떨어뜨려 놓더라도, 한 양자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즉시 다른 양자에도 무슨 일이 생기는 현상 등이 그것이다.
우리 삶의 문제로 들어와 보면, 모순처럼 보이는 일들이 너무 많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할 때가 있다. 양귀자 소설에 나오는 이모처럼, 너무 행복해서 불행한 사람도 있다. 책을 안읽을 때는 읽을 책이 없었는데, 책을 읽을 수록 읽어야 할 책이 늘어난다.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는 자유인데, 그 자유가 민주주의를 죽일 수도 있다.
깨달으면 모든 것이 코스모스
작가는 소설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모순 투성이인 것 같은데, 그 모순을 힘겹게 통과하고 나면 조금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더 큰 그림을 보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다. 모순으로 보였지만 그것이 모순이 아니었음을. 그것은 단지 내 앎이 부족했음을 깨친다. 그리고 한 뼘 더 성장한다. 어른이 된다.
모순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코스모스(cosmos, 조화)가 핀다. 한 동안 그 코스모스 속에서 즐겁게 삶이 노래한다. 그리고 그가 코스모스속에서 충분히 즐기고 나면, 삶은 그에게 또다른 모순을 던져놓는다.
그럼, 또 그 모순을 피하지 않고 살아보는 것이다. 모순으로 보이는 것은 단지 내가 아직 알지 못한 것이 있다는 증거이니까. 그리고 이내 또 하나의 알을 깨고 나면, 코스모스가 찾아온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소설 「모순」은 작가가 40대 초반에 썼다. 모순적인 우리 삶을 보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작가 나름의 해법도 슬쩍 버무려 놓았다. 난 궁금해졌다. 이제 작가 양귀자 선생님이 고희(70세)가 다 되어가는 지금, 그녀는 이 삶의 모순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을까?
삶에서 모순이라고 생각되는 사건이 찾아온다면, 그것은 내가 뭔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우주에는 모순이 없다. 일어날 일이니까 일어나는 것이다.
모순을 징검다리 삼아 코스모스로 도약하면, 모순은 우리의 좋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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