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삶

마더 테레사의 고백, 우리 안의 히틀러와 간디

알깨남 2024. 1. 5. 01:49

마더 테레사는 "내 안에는 히틀러와 간디가 있습니다." 라고 고백했다.
우리 안에는 사랑과 증오, 빛과 어둠, 선과 악이 있다. 
우리 각자는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해야 한다.
 

1979. 12, 격동의 한국

영화 「서울의 봄」 으로, 많은 사람들이 1979년 12월 당시 대한민국을 돌아보고 있는것 같다. 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 언젠가 볼 것 같긴 한데, 지금은 나를 영화관 앞으로 강하게 끌지 못하고 있다. 중학생이던 나는 신문과 TV를 통해 그 일을 접했고, 나중에는 그 역사의 현장 언저리를 돌며 근무도 했다. 그랬던 터라 저간의 사정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것도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이유의 하나다.
 
그런데, 더 깊은 이유는 그게 아니다.
 
젊은 시절, 당시 12.12 사건과 무관치 않은 곳에서 일했다. 12.12 이후 10여년이 지난 후였지만, 그곳은 여전히 당시의 긴장이 남아있었다. 그 긴장의 기운속에서 행해지는 각종 문화에 난 젖어갔다. 처음엔 모든것들이 힘들었는데 점차 그것들이 폼나보였다. 그리고, 나도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그런 권력의 현장에 있을 것만 같은 착각도 했다.
 
그래서 「서울의 봄」 을 보면, 그런 치기(稚氣) 어린 생각들을 품었던 젊었을 때의 나를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나를 오그라들게 할 것이다. 이것이 영화를 아직 안본 진짜 이유다.
 

1979.12, 마더 테레사 노벨평화상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대한민국이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빠져있을 때, 지구의 다른 한쪽에서는 테레사 수녀님께서 그 동안 베푼 봉사와 사랑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테레사 수녀님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테레사 수녀는 수상 소감 연설의 첫 부분을, 성 프란체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 로 시작했다. 나는 이 기도문을 어렸을 때 이발소에서 많이 보았다. '좋은 글이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큰 느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기도문 그 자체의 삶을 살았던 마더 테레사의 기도문을 오늘 읽으면서 큰 울림이 왔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이 기도문을 조용히 낭송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기도문이 되고 싶다는 소망도 함께 일었다. 
 

우리안의 간디와 히틀러

테레사 수녀님은 삶과 사랑에 대해 귀담아 들을만한 말도 많이 남겼다. 작년에 내가 가슴에 새겨 둔 말은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당신과 헤어질 때는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라." 였다. 매번 실천하지 못하고, '아차, 그랬어야 했는데' 하는 꼴이 되긴 했지만, 계속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게 만든 말이다.
 
그분이 이런 고백도 하셨다. "내 안에는 간디와 히틀러가 있습니다." 솔직한 고백이다. 어느 인간이 이런 내면의 대립요소를 갖고 있지 않겠는가? 테레사 수녀는, 자기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올바른 선택을 통해 간디의 길로 나아가는 삶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히틀러와 간디
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히틀러와 간디는 동시대를 살았다. 테레사 수녀님은, 히틀러와 간디가 서로 다른 성격의 명성을 떨치던 시절을 경험했다. 그녀에게는 너무나 극명한 대조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안의 간디를 따르는 선택을 했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다. 자유의지를 자유롭게 행사하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선택을 하다 보면, 자신에게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에 대한 감을 찾아간다. 좋은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한번 굴레를 돌리기 시작하면, 그 굴레는 점점 힘이 세진다. 탄력을 받는다는 얘기다. 그러면 조금씩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가 수월하다.
 
그런데, 나쁜 방향의 굴레는 좋은 방향의 굴레보다 금방 힘이 세진다. 그래서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귀한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지는데 하세월이 걸리는 것이다. 
 
좋은 인간으로 사는 것이 참 쉽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유가 수 십가지이겠지만, 그럴 때마다 성 프란체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문' 을 조용히 되뇌이며 다시 힘을 얻어야겠다. 그리고 나의 간디를 향해, 한 발짝 내 딛어보겠노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