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삶

우리 삶에 적용되는 원리 ⑥ "고인 물은 썩는다"

알깨남 2023. 12. 12. 18:23

앞 글 "우리 삶에 적용되는 원리 ⑤ '뿌린대로 거두리라’ ep.3" 에서, 우리가 뿌린 것을 거둘 때는 세 가지 법칙 - 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한다, 뿌린 결과는 반복해서 돌아온다, 우주 원리와 조화로운 씨는 증식된다 – 이 작용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나쁜 씨만 계속 뿌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세상은 갈수록 폭력적이고 약삭빠른 자들로 넘쳐나는 저질환경이 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지경까지 가지 않도록, 우주는 어떤 원리를 마련해 놓았을까요? 이번 글의 주제는 이에 관한 것입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물 표면은 정지 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접촉하고 있는 산소가 물 속으로 녹아들기 어려워집니다. 외부에서 산소공급이 안되는 것이죠. 그러면 물속 산소농도가 낮아져 미생물들이 번식하며, 이들은 물 안에 있는 유기물 분해하고 발효 작용을 합니다. 이로써 물의 구성성분을 변화시키고, 가스를 만듭니다. 이를 '물이 썩는다'라고 표현하죠. 

 

고여서 썩은 물

 

엔트로피(무질서도) 증가의 법칙

고인 물이 썩는 것과 같은 이런 작용이 물질세상에는 항상 일어납니다. 이를 「엔트로피(무질서도) 증가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열역학 제2법칙이기도 한데, 물리학에서 세상의 현상을 설명하는 원리 중 중요한 위상을 차지합니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외부와 단절된 페쇄계(界)는 가만히 두면, 내부의 질서가 점차 혼잡해지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열(熱)은 고온의 물체에서 저온의 물체로 이동하는 것처럼, 자연에 내재된 법칙입니다.

 

어떤 상태가 변화가 없이 정체(停滯)되면, 정체된 그 상태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하게 내적으로 혼잡해져가도록 되어있는 것입니다.

 

엔트로피 증가

 

 

정체된 것은 결국 붕괴되고 만다

그러니 시스템으로 구성된 그 어떤 것도 폐쇄계로 남아서는 그 모습을 계속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에 가서는 붕괴됩니다. 반드시 외부의 새로운 에너지가 유입되거나,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돌' 은 단단한 물질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서집니다. 돌의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돌의 원자와 분자는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으므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돌의 구조 자체가 붕괴됩니다. 

'동물과 같은 생명체' 도 살아있을 때는 그 구성 물질들이 질서를 유지하지만, 일단 죽어서 변화가 없는 사체(死體)가 되면 그것을 구성하는 물질들의 무질서도가 높아집니다. 각각의 미세한 요소들로 전부 해체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덩치 큰 사체도, 모두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탄수화물은 포도당으로, 지방은 지방산과 글리세롤로 분해되고, 또 일부는 메탄가스로 공중에 흩어집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원리와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인간도 여러 하위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큰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의 영향 아래 놓입니다.

 

우리는 어떤 시스템을 통해 씨를 뿌립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이나 말과 생각으로 씨를 뿌리는 과정은, 우리가 가진 어떤 시스템의 작용입니다. 맨 상위에는 자신의 특정한 믿음이 놓여 있고, 그 믿음의 틀 속에서 일련의 사고와 행동과 말을 출력(出力)하는 시스템이지요. 

 

예를 들어, '행복을 위한 최고 조건은 풍족한 돈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의 머릿속에는 늘 돈을 더 모을 궁리로 가득하지요. 그리고 그에 따라 말도 하고 행동으로도 옮깁니다.

 

또는 '내가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배척되서는 안돼, 인정받는 것이 제일 중요해' 라는 믿음이 깔려 있으면, 무슨 일을 할 때 사람들에게 이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늘 주위를 의식하면서 자기 말과 행동을 검열하지요.

 

우리가 씨를 뿌리는 행위들은, 이렇게 어떤 믿음과 그것 아래에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련의 것들로 구성된 어떤 시스템이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스템으로 우리는 씨를 뿌리고, 때가 되면 거둡니다. 우리가 뿌린 것은 에너지 파동이기 때문에, 우주에 가득한 여러 파동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다시 돌아옵니다. 나쁜 씨를 뿌리면 결과도 나쁘게 돌아옵니다. 이 때가 자기 시스템을 점검할 타이밍입니다.

 

우리의 시스템이 정체되면?

사람이 깨어있지 못하면, 그 피드백을 통해 돌아오는 결과를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기 보다는, 환경을 탓하거나 타인에게 원인을 돌립니다. 또는 기껏해야 자기의 믿음은 옳은데,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또 동일한 시스템을 돌려서 동종(同種)의 씨를 더 쎄게 뿌립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시스템은 더 무질서해집니다. 내적 긴장도 더해지죠. 뭔가 꼬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동일한 씨를 더 쎄게 뿌렸기 때문에, 결과도 더 쎄게 돌아옵니다. 이제 더 혼란스럽습니다.

 

"왜 일이 잘 안풀리지"

"왜 내 주위의 사람들은 다 이 모양이지."

"나는 왜 항상 이렇게 못났을까" 

 

 

그의 시스템은 더 혼란스러워지고, 내부 긴장은 팽팽해집니다. 고통이 심해진다는 얘깁니다. 이런데도 그 시스템을 손보지 않고 또 똑같이 하면, 결과는 똑 같아지겠죠. 또한 그 시스템의 엔트로피는 더 올라간 상태라, 심적 고통은 더욱 심해집니다.

 

하지만, 씨를 뿌리는 자기 시스템의 문제를 성찰하고,  '아하~,  삶의 행복은 꼭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로구나'  또는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가치가 있는 존재로구나' 라는 믿음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기존의 시스템은 창조적 붕괴로 이어지고, 심했던 고통은 사라지면서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집니다. 우주는 이런 과정을 거치는 존재에게 기쁨을 부상으로 선사합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경고성 피드백에도, 그 시스템으로 계속 '같은 씨' 만 뿌려되면 고통은 더욱 강해집니다. 결국 스스로 파멸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내적 고통이 가중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일상 모두를 잠식해 버립니다.

 

멕베스 vs 라스콜리니코프 

인간의 본성을 그린 고전(古典) 중, 세익스피어의 「멕베스」 를 보면,  멕베스는 힘과 권력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아내와 함께 계획을 세우고 배신과 살인을 저지릅니다. 왕위를 쟁취하지만, 이런 악행은 그의 양심과 심령을 괴롭히고, 점점 광기에 사로잡힙니다. 고통이 극에 달하지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살인과 악행을 저지르죠, 그의 공포와 죄책감은 점점 커지고, 삶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멕베스는 그가 뿌린 것으로 인한 내적 혼란, 즉 그가 가진 시스템의 혼돈을 피드백 받았지만 끝가지 그 시스템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파멸에 이른 경우입니다 

 

반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보면,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인을 살해하고 죄책감, 편집증, 고립감에 시달리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려는 시도도 합니다.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사회규범을 위반할 권리가 있는 '비범한 개인' 이라는 자기 믿음으로 말입니다. 전형적으로 기존 시스템을 고수하는 방식입니다. 그럴수록 그의 내면의 갈등은 더 심해지죠.

 

그러다가 가혹한 상황에서도 이타심과 사랑, 인내를 꿋꿋하게 간직하고 있는 '소냐(Sonya)' 라는 여인을 통해,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음을 깨닫고 잘못을 인정합니다. 이러한 고통과 깨달음을 통해 그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말은, 자기 믿음과 그 믿음하에 이루어지는 생각과 말과 행동 시스템을 변화시킨다는 말입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아가지요.

 

 

고집피우는 자를 위한 원리 "고인물은 썩는다" 

 

우주는 인간이 삶을 영위하도록 마련된, 정교하게 디자인된 무대입니다. 그 무대위에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맘껏 뜻을 펼쳐보라고 했고, 너무 무분별해질까봐  '뿌린대로 거두는' 원리를 함께 심어두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정체되어 있으면 그 자체로 붕괴되도록 해서 변화를 촉진시키는 원리도 추가했습니다.

 

그러니까 나쁜 씨를 계속 뿌려대는 자기안의 시스템, 즉 자신이 가진 믿음체계와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면, 고인 물이 썩듯이 그 시스템도 무질서하게 되어가고 점점 더 큰 고통을 느끼도록 되어 있습니다. 좋지 않는 시스템은 스스로 고쳐가도록 계속 피드백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원리 뒤에 숨어있는 더 큰 목적은 무엇일까요? 무엇때문에 인간은 여러 일들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다음 포스팅은 이 문제를 다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