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삶

알렉산더, 빛을 가리지 마세요

알깨남 2023. 11. 21. 09:41

사람을 '두 발로 걷는 깃털 없는 짐승' 이라고, 플라톤이 자신의 강연에서 정의(定義)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어떤 한 사람이 '털 뽑은 닭' 을 들고와서 이게 플라톤이 말하는 인간이다. 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종종 당대 최고의 철학자인 플라톤 강연장에서 이런 어깃장 놓는 말을 서슴지 않은 인물이었다.  
 
맨몸에 천이나 이불을 걸친 채 항아리 속에서 지내면서, 광장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자기식의 철학을 사람들에게 설파하는 자였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상당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출처 :  wikimedia commons)

 
위 그림은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이다. 중앙에서 걸어나오고 있는 두 인물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고, 그 앞에 천만 걸치고 비스듬히 앉아 두 발을 뻗고있는 인물이 그 자(者)다. 바로 디오게네스~
  


얼마전에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의 저자 도우리 작가님의 강좌를 수강한 적이 있다. 그 강좌에서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제임스 윌리엄스, 머스트리드북 출판)라는 책이 텍스트로 지정되어 읽게 되었다. 이 책 프롤로그에는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 대왕의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책 표지 일러스트를 장식하는 인물이 디오게네스이다. 위의 그림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에 그려진 디오게네스의 포즈를 하고 있다.
 

 
그 일화를 요약하면 이렇다.
 

기이한 행동과
거침없는 철학적 언사를 설하는 디오게네스를
당대 최고 권력자 알레산더가 관심을 가졌고,
왕은 그를 추앙했다.
 
어느날, 왕은 디오게네스를 찾아갔다.
그날, 디오게네스는 코린트의 체육관 바닥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호위무사와 부하,
그리고 군인에 둘러싸인 알렉산더는
천 쪼각만 걸치고 누운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는,  깜짝놀랄만한 제안을 했다.
디오게네스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기대감으로 가득찼다.
 
인생을 바꿀 절호의 기회가 온 디오게네스는
과연 어떤 소원을 말할 것인가?
 
디오게네스가  반응을 했다.
그는 알렉산더를 올려다 보며
(치우라는 의미의) 손짓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일갈했다
 
“빛을 가리지 마시오 !”

 
디오게네스의 이  한마디가 내게 매우 강력했다. 쿵 했다. 가슴 중앙의 심장과 위(胃)를 떨리게 하고 명치부터 목젖까지 싸한 진동이 느껴질만큼 신선한 충격파였다.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의 왕한테, 그리고 그 주위에 포진했던 경호인력과 수많은 수행원들의 위세등등한 왕의 행차 앞에서, 천 쪼가리만 두른 헐벗은 자가 이 모든 것을 한낱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것도 가벼운 손짓과 함께. 목소리는 작았겠지만 우뢰와 같은 에너지가 담겼다.
 
이 일화는 디오게네스가 왕의 위세와  달콤한 한방의 유혹에도 끄떡없었음을 보여주지만, 이 일화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가 말한 ‘빛’ 의 의미의 다의성(多義性)에 있다. 이것이 이 에피소드를 두고두고 생각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빛은 물리적으로 그를 비추고 있는 햇빛이기도 하지만, 인간을 더욱 고결하게 만드는 진리의 빛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알렉산더의 제안이 묵시적으로 담고 있었던 부와 명예는, 디오게네스가 살아가고 있는 진리와 자유의 삶을 덮어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적어도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면 왕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자기 욕망을 잘 포장할수도 있지 않은가.
 
큰 유혹을 실로 아무렇지 않은 듯 쉽게 툭 치듯 넘어가는 디오게네스가 부럽다.  그러나 누구나 디오게네스적인 자유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 햇빛이 좋다. 얼른 커튼을 열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