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삶

내 안의 스타벅스, 그의 말을 무시하지 마세요

알깨남 2023. 11. 17. 09:28

“명성이 자자한 오디세우스,

아케아의 자존심과 영광이여 가까이 오소서.

우리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당신 배를 우리 해안에 정박시키소서!

우리 입술에서 쏟아지는

꿀 같은 목소리를 듣지 않고선

어떤 뱃사람도 우리 해안을 지나간 적이 없어요.

마음껏 듣고 더 지혜로운 자가 되어 항해하지요"

 

오디세우스와 사이렌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사이렌의 노래다. 오디세우스는 총명하고 다재다능했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자신의 지혜와 용기에 대한 자긍심이 더 높아졌다. 이런 오디세우스에게 님프 사이렌은, 오디세우스를 한껏 치켜세우며 지금보다 더 높은 지식과 지혜를 갖게 해 주겠다는 노래로 유혹한다.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사이렌 그림
오디세우스와 사이렌 (출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사이렌의 유혹은 배의 난파와 죽음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매혹적인 계략이다. 사이렌이 노래했던 해안가에는 수많은 해골들이 널려있었다. 사이렌에 유혹되어 절벽해안으로 들어온 뱃사람들의 최후였던 것이다.

 

사이렌은 지나가는 뱃사람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포인트를 잡아 유혹한다. 지혜롭다고 자처한 오디세우스에게는 더 현명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미끼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의 귀를 밀납으로 막고, 자신을 돛대에 묶는 절제를 통해 이 위기를 벗어 난다. 이 사이렌의 해안을 자나기 전에, 그녀의 유혹을 피하는 지혜를 여신 키르케로부터 듣고 따랐기 때문이다.

 

 

아합 선장과 모비딕, 그리고 스타벅

"마지막 순간까지 너와 맞서 싸우리라.

지옥의 심장에서도 너를 찌르리라.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숨결을 너에게 뱉으리라."

 

하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 에서 아합 선장이 자기 다리를 잃게 한 고래 모비딕에 대한 증오를 뿜어내는 말이다. 그의 복수에 대한 집착은 극도로 치닫게 되고 결국 배 전체는 파국을 맞는다. 

 

모비딕, 흰 고래
영화 모비딕의 한 장면, 아합 선장과 스타벅

 

이런 아합 선장에게 이성적으로 조언하는 일등항해사(first mate)가 있다. 바로 스타벅 Starbuck 이다. 그는 아합 선장의 복수심이 선원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여러번 조언하고 반발한다.

 

"모비딕은 너를 찾지 않아. 당신(아합 선장)이야말로, 당신이야말로 그를 미친듯이 찾고있어!"

 

아합 선장은 복수심에 매몰되어 자신만의 환타지에 휩싸인다. 모비딕 그놈이 나를 노리고 있고, 내가 그놈을 없애지 않으면 안심이 안되는 심리의 덫에 빠져든 것이다. 이런 심리상태는 소용돌이처럼 강력해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현명한 조언도 튕겨나와 버린다. 

 


21세기 도심 한복판에는 초록색 얼굴을 한 채 커피를 마시러 오라고 미소짓는 사이렌이 있다. 그런데 그 사이렌의 주인은 스타벅스다. 만약 이 둘의 서열이 바뀌면 우리 삶의 항해가 절벽에 쳐박힐 수 있다. 

 

스타벅스 매장 사진

 

우리 안에도 스타벅스가 있다.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다. 하지만 자꾸 귀기울여주고 따라주면 점차 또렷해지고 자주 나타나서 우리 삶의 항해를 이끌어준다. 일등항해사처럼 말이다.

 

오늘도 나의 스타벅스와 함께 즐겁게 항해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