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삶

산에도 ‘자연 낙지’ 가 산다

알깨남 2023. 11. 20. 09:42

작년 요맘때, 숲에 대한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다. 파주 마장호수 인근의 한 야산에서 숲의 생리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아갔다. 실로 이 세상과 우주는 들여다 볼수록 Cosmos(조화) 임을 실감했다거기서 배운 것 중에, 숲에서 벌어지는 낙지 현상에 눈길이 갔다.

 

자연 낙지(自然 落枝)

자연낙지 현상
출처 :  httpswww.toddsmariettatreeservices.com

  

자연 낙지(落枝)란 나무가 필요없게된 가지를 스스로 쳐내는 현상이다. 당시 파주 야산에서도 자연낙지가 진행된 숲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나무가 스스로 자기 일부를 떼내는 것은 보다 잘 성장하기 위함이다. 키가 커버려서 이제는 햇빛을 볼 수 없는 아래 쪽 가지들은 떨쳐 버리고, 그 가지들을 부양하는데 쓰는 힘은 더 높이 성장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담쟁이 같은 덩굴식물들이 자신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방지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나는 오래토록 지녀온 내 일부를 떼내지 못해 한동안 애먹었다. 내 삶의 에너지가 그쪽으로 계속 빨려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그동안 해왔던 관성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다. 물질적으로 더 움켜쥐려 하고, 세상의 인정을 구하려는 욕망, 딸과 아들이 내 방식 대로 멋지게 성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 등이 그것들이었다. 내 삶의 전반부를 온통 이런 것들이 이끌어 온 것이다. 

 

이런 욕망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젊은 시절 그 욕망들이 없었으면 내 삶은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내 성장과 행복에 도움되지 않음을 알고 내려 놓으려 할 때, 이미 그것들은 참 질기게도 나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런 시기에 나무의 자연낙지 현상은 또 하나의 자극제가 되었다. 내 일부를 버리는 것은 더 큰 성장을 위해서라는 단순한 진리를 숲이 한번 더 말해 준 것이다.

 

 

 1단 로켓은 이제 필요없다. 

 

인공위성이 지구 대기권을 뚫고 본궤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많은 추진력을 필요로 한다. 이 추진력을 얻기 위해 2단 또는 3단의 로켓엔진을 장착한다. 특히, 맨 처음 지구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몇 분 동안이 제일 힘든 단계다.

 

로켓 발사 모습
로켓이 구름을 뚫고 대기권으로 나가는 모습

 

이때 사용되는 추진체가 1단 로켓이다. 힘을 제일 많이 내야 하기에 가장 크고 무겁다. 그러나 대기권을 벗어나 본궤도에 들어설 단계에는, 이제 그 1단 로켓을 분리해 내지 않으면, 인공위성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자기무게에 의해 다시 추락하고 만다.

 

1단 로켓의 역할이 끝나면, 그와 이별해야 한다. 사람도 청년기의 삶에 사용했던 로켓이 있고, 중년의 삶에 쓰는 로켓이 있고, 장년 때 쓰는 것이 다르다. 제때  새 엔진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나의 전진을 도왔던 과거의 엔진은 이제 나의 전진을 가로막는 방해꾼이 되는 것이다. 

 

자연낙지한 아래쪽 그 가지들도 나무에게는 성장과정에서 필요했던 것이다. 그 가지들은 나무가 어린시절, 햇빛을 흡수하고 광합성하는데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하고 나서, 이제 그것들과 이별을 해야 할 때가 오면 보내 주어야 한다.  이제 떨어진 가지들은 자연의 더 큰 순환 사이클로 되돌아가, 또다시 다른 방식으로 자연의 일부가 될 터이니 말이다.

 


 

나는 내 삶을 추동해온 여러 욕구들 -  세상으로부터 인정 받고싶은 욕구, 물질에 대한 욕망 등 - 을 떼어내고 있다. 많이 떼내어진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이전과는 반대방식의 새 엔진을 가동시켰다. 과거에 작동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또 알게 됐다. 반대방향으로 간다면서 작동했던 새 엔진 역시, 나의 또다른 보상욕구였다는 것을. 내 깊은 곳에서는, 과거 방식으로는 세상에서 내 뜻을 펼치지 못했으니 이제는 그 방식을 바꿔서, 즉 이런 세상적인 욕망을 누구보다 잘 떨쳐낸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젊었을적 지녔던 물질과, 명예욕들을 버리고자 한  이런 반대방향의 욕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성장에는 단계라는 것이 있는 것이었다. 누구도 한번에 훅 커버리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무에 수놓아진 나이테의 동심원 처럼, 사람도 모두 차근차근 밟아야 할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내가 버려야 할 가지, 떼내야 할 낡은 엔진이 또 분명해졌다. 목표가 분명해졌으니, 또 가보자. 그 곳에 뭐가 날 기다리고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