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요맘때, 숲에 대한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다. 파주 마장호수 인근의 한 야산에서 숲의 생리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아갔다. 실로 이 세상과 우주는 들여다 볼수록 Cosmos(조화) 임을 실감했다. 거기서 배운 것 중에, 숲에서 벌어지는 낙지 현상에 눈길이 갔다.
자연 낙지(自然 落枝)
자연 낙지(落枝)란 나무가 필요없게된 가지를 스스로 쳐내는 현상이다. 당시 파주 야산에서도 자연낙지가 진행된 숲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나무가 스스로 자기 일부를 떼내는 것은 보다 잘 성장하기 위함이다. 키가 커버려서 이제는 햇빛을 볼 수 없는 아래 쪽 가지들은 떨쳐 버리고, 그 가지들을 부양하는데 쓰는 힘은 더 높이 성장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담쟁이 같은 덩굴식물들이 자신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방지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나는 오래토록 지녀온 내 일부를 떼내지 못해 한동안 애먹었다. 내 삶의 에너지가 그쪽으로 계속 빨려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그동안 해왔던 관성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다. 물질적으로 더 움켜쥐려 하고, 세상의 인정을 구하려는 욕망, 딸과 아들이 내 방식 대로 멋지게 성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 등이 그것들이었다. 내 삶의 전반부를 온통 이런 것들이 이끌어 온 것이다.
이런 욕망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젊은 시절 그 욕망들이 없었으면 내 삶은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내 성장과 행복에 도움되지 않음을 알고 내려 놓으려 할 때, 이미 그것들은 참 질기게도 나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런 시기에 나무의 자연낙지 현상은 또 하나의 자극제가 되었다. 내 일부를 버리는 것은 더 큰 성장을 위해서라는 단순한 진리를 숲이 한번 더 말해 준 것이다.
1단 로켓은 이제 필요없다.
인공위성이 지구 대기권을 뚫고 본궤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많은 추진력을 필요로 한다. 이 추진력을 얻기 위해 2단 또는 3단의 로켓엔진을 장착한다. 특히, 맨 처음 지구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몇 분 동안이 제일 힘든 단계다.
이때 사용되는 추진체가 1단 로켓이다. 힘을 제일 많이 내야 하기에 가장 크고 무겁다. 그러나 대기권을 벗어나 본궤도에 들어설 단계에는, 이제 그 1단 로켓을 분리해 내지 않으면, 인공위성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자기무게에 의해 다시 추락하고 만다.
1단 로켓의 역할이 끝나면, 그와 이별해야 한다. 사람도 청년기의 삶에 사용했던 로켓이 있고, 중년의 삶에 쓰는 로켓이 있고, 장년 때 쓰는 것이 다르다. 제때 새 엔진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나의 전진을 도왔던 과거의 엔진은 이제 나의 전진을 가로막는 방해꾼이 되는 것이다.
자연낙지한 아래쪽 그 가지들도 나무에게는 성장과정에서 필요했던 것이다. 그 가지들은 나무가 어린시절, 햇빛을 흡수하고 광합성하는데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하고 나서, 이제 그것들과 이별을 해야 할 때가 오면 보내 주어야 한다. 이제 떨어진 가지들은 자연의 더 큰 순환 사이클로 되돌아가, 또다시 다른 방식으로 자연의 일부가 될 터이니 말이다.
나는 내 삶을 추동해온 여러 욕구들 - 세상으로부터 인정 받고싶은 욕구, 물질에 대한 욕망 등 - 을 떼어내고 있다. 많이 떼내어진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이전과는 반대방식의 새 엔진을 가동시켰다. 과거에 작동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또 알게 됐다. 반대방향으로 간다면서 작동했던 새 엔진 역시, 나의 또다른 보상욕구였다는 것을. 내 깊은 곳에서는, 과거 방식으로는 세상에서 내 뜻을 펼치지 못했으니 이제는 그 방식을 바꿔서, 즉 이런 세상적인 욕망을 누구보다 잘 떨쳐낸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젊었을적 지녔던 물질과, 명예욕들을 버리고자 한 이런 반대방향의 욕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성장에는 단계라는 것이 있는 것이었다. 누구도 한번에 훅 커버리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무에 수놓아진 나이테의 동심원 처럼, 사람도 모두 차근차근 밟아야 할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내가 버려야 할 가지, 떼내야 할 낡은 엔진이 또 분명해졌다. 목표가 분명해졌으니, 또 가보자. 그 곳에 뭐가 날 기다리고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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